지구별 여행자

4월 내내 지쳐있던 정신을 회복하고자 연휴에 '지구별 여행자'를 꺼냈다. 몇 번 본 책이라 특정 부분만 보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집중해서 읽었다. 어떻게 보면 사소할 수 있고, 다르게 보면 하루 내내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내가 다녀온 여행에서는 어떤 대화를 했었는지 떠올리며 마치 여행하듯 읽는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류시화 시인처럼 나도 길 위에서 깨달으며 글을 쓸 수 있을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면서 이번에 좋았던 내용 3가지를 남겨본다.

  1. 순례자의 집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한 번쯤 찾아오고야 마는 것이니, 그 일이 일어난 뒤에야 비로소 그것이 오래전부터 그 시간과 그 장소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것은 하나의 운명과도 같은 것이어서, 그 일을 경험하고 나면 누구도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우연인 줄 알았지만 그건 언제가 나에게 일어날 숙명과도 같은 것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건가 라는 것보다 그건 어떻게든 찾아올 일이었음을 생각하게 된다. 책 속 표현처럼 거부할 길이 없는 많은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해당 에피소드에서는 저자가 여행 중에 들어간 순례자의 집에서 죽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1. 작가 수업
"당신 자신이 진정으로 경험한 것이라면 결코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오. 그것들은 굳이 종이 위에 적어 놓을 필요가 없소. 왜냐하면 그것들은 당신의 가슴속에 새겨지기 때문이오. 그렇지 않소?"

이 문장을 읽고 책을 자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좋은 책' 을 접하는 것이다. 요즘 개인적으로 소셜 미디어(특히, 영상)을 조금씩 멀리하게 되는 이유가 1) 생각을 하지 않게 됨 2) 생각을 읽을 수 없음 이렇게 두 가지가 있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이겠지만 사고의 회로가 잘 안돌아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돌아보면 기억에 잘 남는 건 책이기도 하고. 내용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진짜 경험은 아직 책에서 찾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 상상도 할 수 있어서)

  1. 영혼을 위한 음식
"진리는 단순한 것이오. 마살라 도사를 먹을 때는 마살라 도사만 생각하고, 탄두리 치킨을 생각하지 말 것!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 행복할 것이오."

현재에 집중하라는 말과 의미가 통하겠지만 특히 여행에서는 잘 안되는 것 중 하나이다. 밥을 먹으면서 먹고 난 다음을 생각하고, 이동하면서 도착했을 때 어떻게 해야할 지를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아니면 다른 것과 비교한다거나.
'그저 현재를 받아들이고 즐기면 되지 않을까? 바꿀 수 있는 건 크게 없을테니' 라는 마음가짐을 인도 여행할 때 많이 배운 게 떠올랐다.

내가 라자 고팔란 씨에게 물었다.
"베지터블 브리아나는 뭐고, 베지터블 플라오는 뭐죠?"
손바닥을 뒤집으려 라자 고팔란 씨가 말했다.
"약간은 같고, 약간은 다르오."
애매하기 짝이 없는 대답에 내가 재차 물었다.
"그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죠?"
그러자 고팔란 씨가 메뉴판을 회수하며 말했다.
"둘 다 먹어 보시오. 그럼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지 알게 될테니까. 지식은 돈 주고 살 수 있지만 경험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오."

읽으면서 식당 주인이 말을 정말 잘한다고 생각하여 웃었던 이야기. 두 메뉴의 차이를 들었더라도 정말 알고 먹을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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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깊은 내용이 많았지만 다음 번에 다루는 것으로 하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글쓰면서 '럭셔리 버스' 노래를 오랜만에 들었는데 기분이 좋아져 종종 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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